토니오 크뢰거는 어떤 팽팽한 밧줄에 몸을 의지하고 제어할 수 없이 광분하는 바다의 온갖모습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일종의 환호성이 일어났는데, 그에게는 마치 그 환호성이 폭풍과 밀물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 같았다. 사랑에 감격하여 바다에 바치는 한 노래가 그의 마음 속에서 울려나왔다. 그대, 내 젊음의 야성적 친구여, 언젠가 우리 아직 한 몸이었건만, 그러나 그것으로 그 시는 그만 끝이었다. 그것은 완성되지 못했고 완결된 형식을 얻지 못했으며 냉정한 가운데에 무엇인가 완전한 것으로 빚어지지 못했다. 그의 마음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자베타, 어느 땐가 나를 가리켜 시민이라고, 길 잃은 시민이라고 말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겠지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은 내가 그전에 부주의하게 입 밖에 흘렸던 다른 고백들에 유발되어 내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내 사랑을 당신에게 고백한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자신의 그 말이 얼마나 진실에 적중했는지를 알았을까, 그리고 나의 시민성이 <삶>에 대한 나의 사랑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었을까 하고 나는 자문해 봅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나의 선친은 북쪽 기질이셨지요. 청교도 정신에서 유래하는 명상적이고 철저하며 정확한 성품이셨고 우수에 잠기곤 하셨지요. 불확실한 이국적 혈통을 물려받으신 제 어머니는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소박한 동시에 태만하고 정열적이었으며 충동적 방종성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이것이 비상한 가능성들-그리고 비상한 위험성들-을 내포한 혼혈인 것은 전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 혼혈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예술의 세계 속으로 길을 잃은 시민, 훌륭한 가정 교육에 대한 향수를 지닌 보헤미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예술가입니다. 정말이지 나로 하여금 모든 예술성 속에서, 모든 비상한 것과 모든 천재성 속에서 무엇인가 매우 모호한 것, 매우 불명예스러운 것, 매우 의심스러운 것을 알아차리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시민적 양심이며, 나라는 인간의 내부를 단순한 것, 진심인 것, 유쾌한고 정상적인 것, 비천재적인 것, 단정한 것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는 것도 바로 이 시민적 양심인 것입니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약간 견디기가 어렵지요. 당신들 예술가들은 저를 시민이라 부르고, 또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고 싶은 충동을 느기게 됩니다. 이 둘 중 어느쪽이 더 나의 마음에 쓰라린 모욕감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민들은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나를 가리켜 냉정하다거나 동경이 없다고 말하는 당신들 미의 숭배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세상에는 애초부터, 운명적으로 타고난 모종의 예술가 기질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동경보다도 일상성의 환희에 대한 동경을 가장 달콤하고 가장 느낄만한 동경으로 여기는 그런 심각한 예술가 기질 말입니다.
나는 위대하고도 마성적인 미의 오솔길 위에서 모험을 일삼으면서 <인간>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냉철한 자들에게 경탄을 불금합니다. 그러나 난 그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한 문사를 진정한 시인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나의 이러한 시민적 사랑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온정, 모든 선의, 그리고 모든 유머는 이 사랑으로부터 유래합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사랑이 <사람이 인간과 천사의 혀로 말할 수 있다 해도 이것이 없다면 단지 소리내는 쇠붙이나 울리는 방울에 지나지 않느니라>라고 성경에 씌어 있느 바로 그 사랑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별로 많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리자베타, 나는 더 나은 것을 만들어보겠습니다. - 이것은 일종의 약속입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바다의 물결 소리가 내게까지 올라옵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습니다. 그러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고 있는 한 세계가 들여다보입니다. 그 세계는 나한테서 질서와 형상을 부여받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또한, 나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허깨비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은 부디 마법을 걸어 자기들을 풀어달라고 나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허깨비들과 우스꽝스러운 허깨비들, 그리고 비극적인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허깨비들인데, 나는 이것들에게 큰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사랑은 금발과 파란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 생동하는 밝은 사람들,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일상적인 사람들에게 바쳐진 것입니다.
라자베타, 이 사랑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량하고 생산적인 사랑입니다. 동경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 토니오 트뢰거 중